북다로그
문학의 모든 빛깔이 담긴 기록의 저장소
북다로그는 교보문고의 출판 브랜드 ‘북다’가 운영하는 연재 플랫폼입니다.
‘문학’을 중심으로 기록될 수 있는 다양한 글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매주 소설과 에세이 등 새로운 이야기가 게재됩니다.
3화. 3
“이제 저것도 지긋지긋하다.”
나는 식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한 달 치 분량의 두툼한 약봉지들이 보였다. 엄마는 매일 밤 약 세 봉지씩 먹지 않으면 우울증과 강박증이 심해지곤 했다.
“그래도 약은 꼭 먹고 자. 물 많이 마시고.”
차마 엄마의 눈을 보지 못한 채 말했다.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와 문에 기댔을 땐 무더기로 붙은 상장이 보였다. 책상 옆에 붙이기 시작한 상장은 점차 벽 한쪽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빳빳했던 종이는 눅눅해져 오그라들고 노랗게 바래 있었다. 전등을 켜려고 손을 뻗다가 봉황이 꼬리를 늘어뜨린 학업 우수상 상장 하나에 손길이 멈춰 섰다. 손바닥 날로 무의미하게 그것을 쓸어내리며 나는 과거의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아버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의사가 되기만 한다면 엄마의 병을 치료해 주고 우리 가정도 한순간 바뀌는 줄 알았다. 그러나 주름진 살림살이가 단번에 펴진다고 생각한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어려서부터 견고한 콘크리트처럼 차곡차곡 쌓인 빚더미를 졸지에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도 한 겹 한 겹 그 빚을 걷어 내고 있지만 병원을 개원하거나 센터의 정교수가 되기 전까진 다 사라지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극구 말려 떼지 못한 상장은 또 다른 형태의 채무일 뿐이었다. 우리 집안에 허용된 유일한 복은 내 학업 성취 하나였고, 그 외에 다른 복은 어김없이 지나쳤다. 그러니 엄마의 무료 수술을 기대한 건 내 실수였고 불찰이었다.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 건 새벽 무렵이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깨 나왔을 때, 꺼이꺼이 숨넘어가는 울음이 들렸다. 소리 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이불 안에서 우는 소리였다. 엄마의 울음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한때는 엄마의 눈물샘이 메마른 논밭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한번 터져 나온 엄마의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고, 그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그 울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연구에 더 매진했다. 논문에 쓰일 세포 실험 하나를 마무리 짓고 오후가 되어서야 출장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 팀 교수 세 명은 다음 주 해외 콘퍼런스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강 교수는 사진 및 영상 자료를, 문 교수는 임상 사례를, 정 교수는 참고 문헌을 중요시했으므로 각각에 맞춰 문서를 다듬어 갔다.
문소라 교수의 데이터에 치매로 기억을 잃은 50대 환자의 사례가 등장했다. 나도 옆에서 지켜본 환자로 중학생인 자기 아들도 기억 못 했다. 아들이 아빠와 함께 병원에 올 때마다 엄마가 좋아한다며 슈크림 붕어빵을 사 왔다. 수술 후 ‘엄마 나 기억나?’ 하고 묻던 아들의 물음에 다 식어 버린 붕어빵을 붙들고 펑펑 울던 모습, 달콤한 냄새마저 사랑으로 치환된 그때가 선연했다.
당시만 해도 내 일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내 업에 대한 확신과 도취는 납덩이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김 선생.”
회의를 마치고 나온 강지명 교수가 나를 불렀다. 그 덕에 허우적거리던 생각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땀 때문인지 강 교수의 앞머리가 갈라져 넓적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왜 이렇게 놀라? 숙소 예약은 완료했지?”
강 교수의 가느다란 눈썹이 위로 솟았다.
“네. 관련 내용,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자리에 민감했기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호텔을 제일 먼저 알아봐야 했다.
“좋아. 그나저나 지난주 앵커 로봇 버전 업그레이드한 거 알지? 나에 대한 기대가 큰가 봐. 손가락 감도가 확실히 좋아졌어.”
강지명 교수는 온 우주가 본인을 위해 움직인다고 여겼다. 잘되면 모두 자신 덕분이라 생각하는 속 편한 사람이었다. 나는 강 교수의 손기술이 형편없어 로봇 수술이 아니면 절대 외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5년 전 안전성 문제로 모두가 앵커 로봇을 꺼릴 때 강 교수는 떠밀리듯 이 팀으로 왔다. 불과 몇 년 만에 앵커 로봇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고, 강 교수는 원년 멤버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거머쥐게 되었다. ‘기억 장애 회복술’은 나날이 센터에 돈을 벌어다 주었기 때문에 그는 차기 센터장 자리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버전 때문이겠습니까? 교수님 손이 예리하셔서 그렇지요.”
“뭘 또 그런 소리를.”
그에게 아부를 떨면서도 화가 났고 실력 없는 그가 저 자리에 있는 게 기가 찼다. 그래서인지 강 교수를 볼 때마다 오만한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수술 더 잘할 텐데…… 내가 앵커 로봇을 더 잘 활용할 것 같은데…….
그러나 MRS는 뇌를 다루는 수술인 만큼 애초에 어지간한 레지던트는 뽑지도 않았고, 집도는 오직 교수들에게만 허락되었다. 하지만 연습량만 따진다면 나는 누구보다 월등했다.
강 교수는 그동안 틈틈이 디렉트서지컬사에서 들은 정보를 전해 줬다.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빤히 보여 흘려들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앵커 로봇 말이야. 내년 초쯤이면 상용화는 문제없겠어. 아마 다음 달이면 보안 업데이트도 완료할…….”
“무슨 업데이트요?”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말을 잘랐다.
“보안 정책인지, 아니면 서비스인지 뭘 대대적으로 바꾼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치 끝에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엄마가 후보로 뽑히지 않으면 내 손으로 직접 수술할 생각이었다.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으니 병원 몰래 로봇에 접근할 계획이었다. 내년이면 펠로우가 될 것이고 조교수 트랙에 오를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때가 되면 좀 더 주도면밀하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업데이트라니. 그렇게 되면 수술 로그가 지금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을 수 있고, 몰래 수술했다는 흔적이 남을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시한폭탄 타이머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입이 바싹 말라붙었다.
“아참, 김 선생. 네스트 신경외과에 주경재 원장, 최근에 논문 쓴 거 없는지 찾아봐 봐. 올해 병원 건물도 새로 지었다는데 당최 무슨 수술을 하는지 모르겠어. 최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자식이 내 대학 후배인데, 고위층 대상으로 떼돈을 벌었다더니 선배가 전화해도 연락도 안 받고 말이야. 아무튼 부탁 좀 하겠네.”
강지명 교수는 실력보다 인맥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후배가 치고 나간 것에 골이 난 모양인지 주저리주저리 푸념을 늘어놓더니 연구실로 돌아갔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MedDB’에 들어가 논문을 찾았다. 저자 항목에 ‘주경재’를 입력했으나 최근 쓴 논문은 하나도 없었다. 1년으로 설정된 필터를 풀고 전체 기간을 검색하자 30년도 전에 쓰인 논문만이 낡고 빛바랜 유물처럼 남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창에 ‘네스트 신경외과’라고 쳐 봤으나 그 흔한 홈페이지도, 방문자 후기도, 건질 만한 기사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브라우저를 닫고 강 교수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주 원장에 대한 빈약한 정보와 함께 호텔 예약 확인서, 항공권, 콘퍼런스 일정표를 첨부했다. 그때 좌측 모니터에 띄워 둔 공용 캘린더가 보였다. 수술 일정으로 가득 찬 화면 속에 회색으로 음영 처리된 칸이 눈에 들어왔다.
교수 셋이 모두 열흘간 자리를 비우네?
묶여 있던 실타래가 툭 풀리는 느낌이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 팀은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팀한테는 환자 데이터도, 앵커 로봇 접근 권한도 없다. 기록만 잘 지운다면 은폐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건, 신이 주신 기회인가?
멀리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베갯잇을 적시던 엄마의 울음이 발끝부터 번져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일을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실로 향했다.
“신진서, 나 좀, 도와줘.”
계단을 뛰어온 터라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신진서는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공초점 현미경의 접안대에 두 눈을 고정한 채 입만 움직였다.
“급한 일이면 전화하지.”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는 그녀가 들여다보는 뇌 신경망이 우주의 끝자락처럼 펼쳐져 있었다. 검은 바탕 위에 형광색으로 보이는 신경 가지들이 은하수처럼 빛났다. 뉴런은 끊임없이 파닥거리는 채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필사적으로 서로를 이으려 하고 있었다. 어떤 가지들은 툭 끊어져 외로운 작은 별이 되었고, 또 어떤 가지는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큰 파동을 일으키며 한데 뭉쳤다.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는 장면을 넋 놓고 관찰하다가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뭘 도와 달라는 건데?”
신진서가 고개를 돌리고서 나를 지긋이 보았다. 그녀는 종종 내가 뇌를 들여다볼 때와 같은 눈망울로 쳐다보곤 했다.
“수술.”
“휴가 대신 어시 서 달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집도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