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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로그

문학의 모든 빛깔이 담긴 기록의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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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2화. 2

1분 전 업로드된 파일에 1차 명단이 올라와 있었다. 결과를 보기까지 차마 숨을 쉬지도 못했다.

 

어머니 이름이 김, 뭐라고 하셨지? 너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김소희.”

 

신진서가 물었을 때 나는 이미 확인을 끝냈다.

 

이번에 수술하면 엄마가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엄마는 평생 인생을 한탄하고 비난하며 버려진 잡동사니들로 허한 마음을 달랬다. 그 쓰레기들이 자신의 빈 기억을 채워 주길 바랐겠지만 기억이 앗아간 공허함은 쉬이 메워지지 않았다. 나는 이 기회가 우리 모자에게 조금이나마 변화를 안겨 줄 거라 기대했다. 기억을 찾는다면 엄마는 달라질 것이고 나 역시 존재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그 소중하고도 희박했던 가능성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 표정을 본 신진서가 진지한 얘기를 꺼냈다.

 

교수님께 따로 말씀드려 보는 건 어때? 나도 옆에서 도와줄게.”

 

구걸, 뭐 그딴 거 하라고? 나 그런 거 질색하는 거 몰라?”

 

나는 발끈했다.

 

아니, 다른 팀도 아니고 우리 팀 수술인데 왜?”

 

이 수술이 얼마짜리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야?”

 

그걸 누가 몰라? 넌 옛날부터 이런 말만 나오면 화부터 내더라.”

 

신진서는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찔러 넣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특혜를 혐오했다. 이것은 어릴 적 생긴 내 방어 기제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매번 1등을 하는데도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아이들은 따로 있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평가받는 시절이었다. 내 엄마가 저 지경이 아니었다면,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면, 그냥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지금과 다른 대우를 받았을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책을 펼쳤다. 교과서를 수십 번 읽고 문제집을 풀고 또 풀고, 방학 때면 도서관에서 온갖 책을 빌려 보았다.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부모의 배경을 이기는 힘은 성적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그 얘긴 그만해.”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내가 담당이었으면 당연히 너희 어머니 뽑았을 텐데.”

 

신진서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내 삶에 편히 끼어드는 모습에 왈칵 짜증이 났다. 남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서 냉랭하게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가 교수야?”

 

?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보조로 서잖아. 이렇게 된 김에 내년에는 아예 우리가 선발한다고 할까?”

 

신진서는 거침없었다. 나와 출발선상이 다른 아이였다. 의사 부모를 둔 그녀는 뭔가를 살 때 크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연구비 증액을 요청하거나 새로운 실험 장비를 사야 할 때도 당당한 태도였다. 교수들에게 비용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치를 보고 쭈뼛거리는 나와는 판이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친구로 둔 이유는 성형외과를 가라는 부모의 반대를 격렬히 무릅쓰고 모두가 기피하는 이 과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고집스러움을 높이 샀다.

 

내년에 앵커 로봇 상용화되면 무료 수술 제도도 사라지는 거 몰라?”

 

내 말에 신진서는 옅은 탄식을 뱉으며 유리관 속 뇌 하나를 응시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기증자의 것이었다. 수축한 조직 사이로 뇌실만 뚜렷하게 커진 뇌의 단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무심코 말을 꺼내 버렸다.

 

차라리 내가 집도해 버릴까 보다.”

 

좋아. 수술 그까짓 거.”

 

신진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진서는 내 말을 가벼이 치부하고 있었다.

 

* 

우리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족히 15분은 걸어야 나타난다. 빽빽하게 지어진 건물들 바닥에 주근깨처럼 박힌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굴러다니면 비로소 집 근처에 다다른 것이다. 언덕을 오르며 살짝 시야를 높이자 굵게 엉킨 전선이 새 떼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까만 전선은 빌라 위에 뜬 보름달마저 가두는 쇠창살 같았다. 이곳을 지나면 은은한 달빛도, 빛나던 내 일도 까맣게 암전되어 버렸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즈음, 지나가던 남자 한 명이 코를 막았다.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냄새 때문이리라. 오늘은 또 엄마가 뭘 주워 왔을까. 집 앞에 다가갈수록 퀴퀴한 곰팡내와 말린 오징어 냄새가 콧속을 자극했다. 내겐 익숙한 것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높이 쌓인 여섯 개 남짓의 박스가 창문을 막을 기세로 솟아 있었다. 그중 한 박스는 사면으로 입을 벌린 채 엄마 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 쪼그려 앉은 엄마는 양말을 한 세트씩 비닐에 밀어 넣었다. 맨바닥에서 양말을 비닐에 감싸 곁에 놓인 박스에 집어넣는 동작은 노동이라기보다 수행에 가까워 보였다.

 

이번엔 양말이야?”

 

머리끈, 화장품 샘플, 마스크, 캐릭터 볼펜 등 비닐 안에 들어가는 종류는 매번 바뀌었다. 회색 물방울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양말은 흡사 벽지에 앉은 곰팡이처럼 보였다. 천장에 스며든 누수 흔적 때문인지 부풀어 오른 노란 장판 때문인지, 우리 집엔 무엇을 갖다 놔도 구질구질해 보였다.

 

나는 미적대지 않고 곧바로 결과를 말해 주기로 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물 한 모금까지 마시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엄마…… 결과 나왔어……. 그 수술 여부.”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탈락이야. 엄마보다 훨씬 증상이 심한 사람들이 선발됐어.”

 

나는 일부러 무료 수술 대상에 오른 다른 환자에 대해 일러 주었다. 그 말이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기대해서였다. 그들은 실제로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에 비하면 엄마는 멀쩡한 편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냐?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쉬어라.”

 

엄마는 단념하듯 말했지만 비닐에 양말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도무지 작업을 이어 가지 못했다.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가 침 삼키는 소리와 한숨 소리를 앗아가 주었다. 엄마는 살면서 내게 바란 것이 많지 않았다. 해 준 것이 없는 만큼 내게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기억 수술. 어쩌면 이게 엄마의 마지막 바람일지도 몰랐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왜 기억을 찾고 싶어? 어차피 사라진 기억 모른다고 문제가 될 것도 없잖아. 그런다고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기억을 잃은 엄마가 가장 찾고 싶어 하는 건 아버지였다. 엄마는 자식의 아버지조차 기억 못 한다는 이유로 평생 손가락질 받았다. 때가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언젠가는 아버지를 만나게 될 거라고 내게 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관함에 배낭을 맡기고 길을 떠난 것처럼 엄마는 어딘가에 기억을 넣어 두고 홀로 인생을 여행해 왔다. 그런 엄마의 인생길이 한심하고 답답했다.

 

너 기억 나냐? 봉구?”

 

엄마는 장판에 널린 양말 더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봉구는 초등학생 때 키우던 강아지였다. 풀숲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 상자 안에서 처음 봉구를 발견했을 때, 상자 겉면엔 굵은 매직으로 가져갈 사람 가져가세요!’라고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떨고 있는 녀석을 가슴팍에 고이 안고 데려오는 동안 보드라운 털이 내 온몸을 데워 주었다. 엄마는 강아지를 버릴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 모자는 동물병원에 데려가 건강 검진을 시켜 주거나 값비싼 놀잇감을 사 줄 형편은 안 됐지만 녀석을 정성스레 먹이고 씻기며 키웠다.

 

그렇게 봉구가 우리 집에 온 지 두 해가 지났을 무렵, 나는 봉구를 잃어버렸다. 놀이터 그늘막에 매 두고 미끄럼틀을 타고 왔더니 봉구를 묶었던 끈이 고리 모양을 유지한 채 모래 위에 반쯤 묻혀 있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정들었던 봉구를 찾아 한 달 넘게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지금도 봉구를 생각하면 그 축축하고 까만 콧잔등이 아른거렸다.

 

기억나지.”

 

그때 네가 한 말도 기억하냐?”

 

이제 봉구가 어떻게 됐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제발 알기나 했으면 좋겠어…….”

 

밤새도록 울며 했던 말을 엄마도 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다. 결론이 무엇이든 상관없으니까 알기나 했으면 좋겠다. 반성하든 원망하든, 뭘 알아야 시작할 거 아니냐. 모르니까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겠다. 그냥, 꼼짝없이 서 있는 느낌이야.”

 

 

 

과거를 잃어버린 엄마는 오지 않은 미래에 일말의 낙관도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