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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 김수오
1. 김수오
그것은 웅덩이에 박힌 고무공처럼 고이 갇혀 있었다. 심장이 수축할 때마다 혈류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미세하게 들썩이는 뇌. 그 유약한 회백질 덩어리가 인간을 다스린다는 사실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기억의 산파가 되어 꺼져 가는 기억을 재탄생시켜 왔다.
‘브레인 임상연구센터’를 나와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섰다. 맞은편에 늘어선 고급 아파트는 옥상마다 수영장과 바를 갖췄다고 했다. 은은하게 내뿜는 조명마저 향기가 느껴지는 공간. 가까이 있어도, 멀어져도 그 꼭대기 층은 볼 수 없었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낮아지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폭이 좁아지고 축축하고 음습한 기운이 밀려올 때,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는 길 곳곳엔 주차된 차와 오토바이, 무분별하게 버린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분명 고급 아파트보다 더 적은 주민이 살고 있는데 왜 삶의 흔적은 이곳에 더 짙게 밴 걸까.
빌라 입구는 페인트칠이 벗겨져 마른 가지처럼 쩍쩍 갈라졌고, 고장 난 센서 등이 쉴 틈 없이 깜박였다. 터지기 직전의 뇌혈관처럼 파르르 발광하는 필라멘트를 보며 지층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또 엄마가 뭘 주워 왔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여니 비릿한 냄새를 머금은 부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란 장판 위에는 변색된 접시부터 이 나간 사기그릇까지, 각종 식기가 발 디딜 틈 없이 깔려 있었고 엄마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가스불 앞에서 국을 휘젓고 있었다.
“이건 또 어디서 얻어 온 거야?”
스테인리스 대접 하나를 들어 올려 보니 안쪽 표면에 숟가락으로 할퀸 자국이 가득했다.
“시장 갔다가 용케 건졌다.”
엄마는 한 손으로 국자를 쥔 채 뒤돌아 나를 보았다. 눈가에 뿌연 미소가 번져 있었다. 백화점에서 쇼핑이라도 하고 온 것 같은 풍족한 여유, 그 구차한 해맑음이 궁색했다.
짐은 아무리 버려도 금세 불어났다. 엄마는 선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청소기, 부식된 세탁기를 ‘쓸 만한데 왜 버려’라는 말과 함께 기어코 들였다. 우리 집 형편상 헌 물건 사용까지는 감내해야 했지만 발에 안 맞는 신발, 터진 봉제 인형, 다 푼 수학 문제집 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그만 집구석에서 감당할 양도 아니었다.
“제발 좀.”
아무리 신경질을 누르고 타이르듯 말해도 엄마는 듣지 않았다. 말한다고 고쳐질 문제였으면 진작 해결되었겠지.
그렇게 지독히도 물건을 모으는 엄마가 유일하게 없애는 게 하나 있었다. 돈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내가 번 과외비는 각종 사기로 소멸되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빚만 남았다. 사채에서 빠져나와 은행 빚만 남기기까지 나는 20대를 온통 쏟아부어야 했다.
식탁 한가운데에 생선 대가리 찜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나는 삐그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엄마 음식은 어떨 땐 싱겁고 어떨 땐 밤새 물이 당길 만큼 짰다. 간을 맞추는 게 요리의 전부라면 엄마의 요리는 텅 빈 셈이었다. 그러니 첫술을 뜨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내일이 그 수술 발표날이지?”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내내 궁금했지만 내가 밥 한 숟가락을 뜰 때까지 기다린 게 분명한 얼굴이었다.
MRS, ‘기억 장애 회복술(Memory Recovery Surgery)’은 치매 환자들의 잃어버린 기억을 회복시켜 주는 수술이자 내가 연구하는 분야였다. 치매 환자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나를 임신하기 전 2년간의 기억이 아예 없었다. 기억 장애라는 큰 틀에선 엄마도 수술 대상자였다.
“어. 너무 기대하진 말고.”
확신 없는 내 말투에 엄마는 고개를 푹 숙였다. 듬성듬성 드러난 두피와 가냘픈 머리숱이 오늘따라 유독 처량해 보였다.
***
내가 일하는 브레인 임상연구센터는 뇌를 본떠 지어졌다. 두 동으로 이루어진 반구형의 건물은 멀리서 봐도 좌뇌와 우뇌를 연상시켰다. 외벽을 타고 1층에서 20층까지 뱅글뱅글 타고 도는 계단은 대뇌의 이랑과 고랑을 묘사한 듯 뒤엉켜 있었다. 특수 화합물을 사용해 탄성을 늘렸다는 외장재는 내장처럼 탱글탱글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 신기한 듯 벽을 만지는 사람도 많았다.
좌동과 우동을 잇는 구름다리엔 풀과 나무, 분수대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분수대 옆을 지날 때면 언제나 묵직한 물줄기가 내 장기 깊숙이 스미는 것 같았다. 화분이 물을 머금고 이파리가 푸릇해지듯 나는 그 물소리를 들으며 밀려오는 잠을 깨우곤 했다. 분수대 남쪽으로는 센터 초창기부터 자리를 잡아 온 베이커리 카페가 있었다. 연구에 지친 의사들이나 치료의 무료함을 달래러 나온 환자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나는 그들을 피해 후미진 복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건물에서 마지막 남은 커피 자판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수오. 나도 한 잔 부탁해.”
어느샌가 의대 동기이자 나와 같은 MRS 연구팀인 신진서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커피를 뽑으려던 사실도 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뒤늦게 종이컵을 꺼냈다. 뜨거운 커피를 향도 음미하지 않고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네가 알아서 마셔.”
“그래. 내가 너무 큰 걸 바랐지. 근데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어, 너답지 않게?”
내가 아무런 대꾸를 안 하자 신진서는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눈을 크게 떴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신진서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매일 보는 똑같은 모습이었다.
“모르겠는데?”
“머리했잖아! 어제 오래간만에 휴가라 하고 왔는데, 동기가 그것도 못 알아봐 주고. 서운해.”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넘긴 신진서가 손으로 빗질하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수 없었다. 구불구불 말린 덕에 얼굴이 더 커 보인다고 할 순 없었으니까.
“아, 참. 오늘 결과 나오는 날이지?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구나?”
커피를 쥔 내 손이 유독 뜨거워졌다. MRS 연구팀에서는 후원금으로 1년에 세 명씩 무료 수술을 해 주었다. 그 희박한 확률에 기댄 것도 벌써 3년째였다.
MRS의 중심에는 앵커 로봇이 있었다. 기억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앵커를 내리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뇌혈관을 자극하는 초정밀 수술이었다. 국내에서 개발된 로봇이 전 세계에 한 대뿐이었는데 수술비가 수억 원대였고, 그마저도 환자 상태가 중증이 아닐 때의 비용이었다. 내가 기댈 건 후원뿐이었다.
무료 수술 접수를 위해선 교수진 합의를 거쳐 후보군이 추려지는데, 주로 취약 계층이나 희귀 증상 위주로 선발되었다. 그들은 인터뷰와 심층 검사를 거쳐 수술대에 올랐다. 나는 이런저런 말 나오는 게 싫어 신청 서류에 보호자 이름을 엄마 친구로 적었고, 유일하게 신진서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 놓았다. 엄밀히 말하면 서류를 작성하는 걸 본 신진서가 집요하게 캐물은 까닭이었다.
“돼야 할 텐데. 꼭 되셨으면 좋겠다. 어머니 기억 찾으시면 제일 궁금한 게 뭔지 물어봐도 돼?”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혀끝에 텁텁한 끝맛이 감돌았다.
“……아버지.”
“아버지?”
“어. 뭐 하는 놈인지, 왜 나를 버린 건지 알고 싶어.”
혹시나 뽑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오랫동안 가둬 온 내 울분이 사그라들지, 아니면 처참히 폭발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신진서의 입가가 아래로 처지더니 굳어졌다. 이런 반응이 익숙할 법도 한데 동정 어린 시선은 가시 박힌 손톱처럼 여전히 따갑고 불편했다. 나는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수족관.”
“같이 가.”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건물 밖으로 반소매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만발했던 벚꽃 대신 초록 잎이 무성해졌다. 생각만 해도 끈적이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중이었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곳을 찾았다. 정식 명칭은 ‘뇌 보관실’이었지만 우리 팀은 이곳을 ‘수족관’이라 불렀다. 파란 백라이트가 유리를 물들여 방 안을 심해처럼 고요히 만들어 주었다. 뇌가 잠들어 있는 직사각형 유리관이 천장까지 벽을 에워쌌고 각 용기엔 기증자 번호가 라벨링되어 있었다.
“뇌를 보면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아.”
“그렇게 좋니? 뇌가 그렇게 좋아?”
신진서는 뇌에게 질투라도 하듯 말했다. 너는 아니냐고 물으려는 찰나, 신진서의 가운 주머니가 윙윙거렸다.
신진서는 휴대폰을 들어 발신인에 교수 이름이 찍힌 것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자못 들떠 있었다. 수술 명단 선발을 위한 교수진 회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네, 교수님. 네.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황급히 물었다.
“뭐라셔?”
“선발자 명단 나왔으니까 전화해서 1차 합격 여부 알리고, 방문 일정 잡으라고 하셨어. 너도 봐 봐. 어머님이 있으셔야 할 텐데.”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공유 폴더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