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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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
운암은 법당을 올려다보았다.
고작 계단 108개를 오르지 못해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생가를 지키던 사진 속 위풍당당한 모습이 벌써 50여 년 전이었다. 이젠 세월에 무너질 대로 무너진 늙은이일 뿐. 퀭한 눈 주위로 얼룩처럼 박힌 주름과 검버섯, 얇아진 피부 아래로는 힘없이 맥동하는 핏줄이 비쳐 보였다. 산소통에 이어진 콧줄은 마치 덩굴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 치워 버리고 법당에 들어가고 싶었다. 제 집을 지어 준 도편수의 장례를 멀리서 보고만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당장은 이사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 대신 그를 잘 보내 주길. 또 나 대신 그를 잘 불러오길.
*
엎드려 있던 건승이 일어나 범근에게 몸을 굽혔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해 들어서였을까, 건승은 영정 속 범근이 어딘가 서러워 보였다.
건승은 순간 운암의 영정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다 범근의 영정 뒤 불상을 보며 상념을 떨쳐 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초가 타들어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건승이 상주인 벽종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말총머리의 남자 벽종이 슬픔을 삼키며 대답했다. 품이 큰 개량 한복 차림에도 다부진 몸이 티가 났다. 마른 체형의 건승과 나란히 서니 더욱 어깨가 커 보였다. 이는 벽종이 일부러 꼿꼿하게 서 있던 것도 한몫했다. 마치 이운암이 회춘한 듯한 그의 손자에게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니 건승은 그와 달랐다. 관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주눅들어 보이는 자세.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 무게감이 할아버지 발끝에도 못 미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벽종은 거대한 나무 아래서 큰다는 게 녹록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국부 이운암의 손자…… 이건승의 삶은 분명 평범과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건승이 주변을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잠깐 내려가시겠어요? 조부님이 뵙고 싶어 하십니다.”
벽종은 법당 밖에 늘어선 관용차들을 흘긋 내려다보았다. 이운암이 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귀빈 대접을 하고 싶진 않았다. 지 대목님과 무슨 관계였든, 그의 방문이 썩 반갑지 않았다. 벽종은 불의를 못 보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이운암이란 그에게 불의 그 자체였다.
“죄송합니다. 거동도 불편하시고, 보는 눈도 있다 보니까…….”
건승은 변명을 붙이며 재차 부탁했다. 그가 더 볼품없어 보이는 이유였다.
“그런데도 애써 오셨으니, 조문만 하시려는 건 아닌가 봅니다.”
“하…… 그러니까, 저도 이게 참…… 어떻게 된 일인지…….”
건승이 난감한 듯 목덜미를 문질렀지만 벽종은 이운암이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는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조문만 하러 찾아올 위인이 아니었다.
“생가 때문에 오신 거 아닙니까. 다시 지어야 할 텐데요.”
벽종의 말에 건승은 당황했다. 건승은 이왕 들킨 김에 눈을 딱 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문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편수마다 고유의 건축 기법을 제자한테만 전수한다고요.”
“벌써 많이 알아보고 오셨네요.”
벽종이 말에 뼈를 담아 대답했다.
건승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옥은 공장에서 찍는 기성품이 아니었다. 심지어 별도의 도면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설계도는 오직 도편수의 머리에 있고, 나머진 그가 지시하는 대로 나무를 가공할 뿐이었다. 때문에 도편수마다 각자의 세월이 쌓이며 어디에도 없는 자기만의 기법이 만들어진다. 나이테처럼 쌓인 그 노하우는 아무에게나 전수하지도, 또 전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들 밑에서 수년간 어깨 너머로 흡수하며 터득해야 했다. 때문에 도편수는 피 가 아닌 기술을 물려주며 가문을 형성했다. 그렇게 전승되는 것이 바로 기문(技門)이었다.
벽종의 언짢은 반응에 건승은 몸을 굽신거렸다. 할아버지가 나름 도의를 다했는데도 너무 차갑게 구니 서운해질 지경이었다. 장례비 전부를 대겠다 해도 극구 사양한 벽종이었다. 대신 이곳에 화환을 숲처럼 깔아 줬고, 기부 명목의 조의금도 넉넉히 챙겨 넣었다.
“손자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뿐입니다. 도와주십시오. 한 대목님. 지범근 기문을 이어받은 수제자이지 않습니까.”
“그 이상이죠. 절 아들로 거둬 주셨으니까.”
“아, 아들이요?”
지범근의 아들, 한벽종이라니.
대목들 사이에서 쓰이는 관념적인 표현인가 싶었다. 하지만 벽종의 진지한 태도에, 곧 그가 지 대목의 양자라는 걸 깨달았다.
“절대 복원하지 마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입니다. 그러니 저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죠.”
벽종은 새벽에 아버지가 남긴 말을 떠올리자 목이 메었다. 그 의중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벽종은 그가 편히 갈 수 있도록 아들의 도리를 다할 것이었다. 생가 복원은 없었다.
“할아버님껜 잘 전해 주세요. 도움은 못 드릴 것 같다고.”
건승은 조심스레 관용차의 문을 닫았다. 운암은 손주의 어두운 얼굴에서 결과를 직감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운암의 메마른 숨결이 쌕쌕대며 거칠어졌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더니 쇠를 긁는 듯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건승은 손수건을 꺼내 운암의 턱밑으로 흐르는 누런 가래를 닦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으니. 화재 현장은 소방청이, 방화범은 경찰청이, 그리고 복원은 이운암 기념재단의 몫이었다. 하지만 첫 스텝부터 꼬여 버린 건승은 면목이 없었다.
다른 도편수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날 이 땅에 몇 없는 도편수 중 제일인 지범근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많은 대목이 그를 따르고 존경했다. 그런 그가 벽종을 통해 복원 금지를 천명했으니, 누구도 어기지 않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세상이 달라졌다. 이운암의 위세는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았다. 세상의 절반이 그의 죄업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의 절반이 생가의 복원을 원치 않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남들이 뭐라든 건승에게 운암은 소중한 가족이었다. 건승은 생가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뛰놀아 주던 그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고정하세요. 방법은 어떻게든 찾아볼게요.”
건승은 기약 없는 말로 운암을 진정시켰다. 겨우 기침이 가라앉은 운암은 가느다란 손을 까닥이며 건승을 가까이 불렀다. 건승은 무슨 중요한 말일까 싶어 수행 비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수행 비서는 잘 훈련된 개처럼 재빨리 운전석에서 내렸다.
차 안에 온전히 두 사람만 남자, 운암은 건승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 온 그의 비밀이었다.
*
독일 쾰른에선 전날부터 폭우가 이어졌다.
재헌은 교정에 차를 댄 순간부터 오늘 수업도 쉽지 않겠다고 짐작했다. 안 그래도 열성적인 학생 하나 없는 한낱 교양 수업이었다. 그런데 비까지 오니 축 처지는 분위기에 재헌도 기운이 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재헌은 강의실의 허공에다 《세계의 나무와 건축 개론》을 읊고 있었다.
“나무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다.”
재헌이 감정 없는 독일어로 말했다. 학생들은 그가 질문이라도 할까 책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대놓고 엎드려 졸고 있었다.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했지. 신으로서 숭배받고, 악마로서 배척받으며 우리의 의식주 모든 것에 관여했다. 수목 신앙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인 거지. 이는 시대 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건축 양식에서 발견된다.”
재헌은 영국 인류학자 J.G.프레이저의 《황금가지》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인류의 신화와 전설, 괴담과 의식엔 늘 나무가 있음을 주장했다. 나무를 주술적으로 해석하고, 또 그것을 믿으며 행하는 것. 바로 ‘수목 신앙’이었다.
오늘날엔 흥밋거리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없이 목조 건축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강의 평가가 바닥을 쳤다. 닳고 닳은 쾰른문화대학의 시간 강사 지재헌은 기대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사례를 얘기해 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