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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로그

문학의 모든 빛깔이 담긴 기록의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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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1화. 파가(破家) — 집을 허묾

그는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이 먼 미래인지 먼 과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아주 긴 시간을 지배해 온 남자였다. 대형 액자 속 연미복을 입은 중년의 이운암이 자신의 집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진임에도 자신감 넘치는 그의 존재감이 어두운 생가 안을 가득 채웠다. 한옥 안엔 나무 냄새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마룻바닥, 서까래, 벽창호가 자신이 난 곳을 잊지 않은 듯했다. 다만 그 예스럽고 고고한 멋을 비상구 등과 소화기가 해치고 있었다. 전 대통령의 생가라는 장소는 보통 그러했다. 그 상징성과 역사적 가치 때문에 문화재 혹은 볼거리로 보존되기 마련이었다. 오늘날 ‘이운암 생가터’는 그의 일생을 전시하는 일종의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퍽 고리타분한 장소지만, 경북 계류면의 주민들은 좋든 싫든 한 번쯤은 찾게 되는 곳이었다. 대개 부모나 조부모 손에 끌려왔거나, 그도 아니면 학창 시절 수학여행 코스인 경우였다. 그 밖엔 선거 전후로 우파 국회의원들이 단골 순례지로 찾아오곤 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생가를 못마땅해했다. 이운암 기념재단이 이 오래된 집에 방범 장치와 CCTV를 둘러 관리하는 이유였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일 리는 없었다. 폐장 시간인 오후 6시에서 한참 지난 오밤중이었다. 이 시간에 여길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그 목적은 대부분 하나였다. 퍽! 무언가가 날아와 창호지를 뚫고 이운암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골골골 구르다 멈췄다. 곧 테니스공 크기의 구체 사이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금동 재질의 구체 표면엔 장인이 세공한 듯한 연꽃이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었다. 불교 미술을 기반으로 한 향로였다. 그 속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불티는 사방이 목재인 이곳에서 또 다른 꽃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내 불꽃이 만개했다. 삽시간에 매캐한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불길이 이끼처럼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퍼져 나갔다. 어째선지 방범 장치는 물론, 스프링클러도 먹통이었다. 사진 속 이운암이 아지랑이에 일렁이다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곳곳에 진열된 그의 역사도 불타올랐다. 월남전에서 그가 지휘하는 모습의 흑백 사진과 무훈을 증명하는 훈장들. 이후 정계에 입문해 군복 대신 양복을 입고 활약했던 사진들까지. 뜨거운 열기에 액자 유리가 갈라지며 터져 나갔다. 쉬익…… 쉬익……. 불길 속에서 기괴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곧 시커먼 존재가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방화범은 검은 판초로 온몸을 감싼 채 얼굴에는 부적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니,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동그란 렌즈 두 개만 빼고 모든 곳에 부적과 경문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방독면이었다. 그동안 이곳을 찾아와 낙서를 하거나, 오물을 뿌리고 가던 이들은 종종 있었다. 방화 시도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불청객은 그들과 달랐다. 행색뿐 아니라 그 태도가 유독 그러했다. 누가 올까 염려하거나, 붙잡힐까 도망치려는 기색도 없이 당당했다. 마치 할 일이 있어 온 사람처럼 방화범은 그저 이운암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방독면 렌즈에 비친 이운암은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화염에 삼켜졌다. 기와집 밖으로 연기와 불꽃이 치솟았다. * “오늘 오전 1시경, 경상북도 계류면에 위치한 이운암 전 대통령 생가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소방차 수십 대와 소방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진화에 나섰고, 때마침 내린 비까지 더해져 불길은 세 시간 만에 진화되었습니다.” TV에선 긴급 뉴스가 한창이었다. 소방차가 뿜어 대는 물줄기에 현판이 떨어지자 매캐한 잿가루가 일었다. 그 늦은 시간에도 몰려든 사람들의 탄식이 여과 없이 화면에 담겼다. 드론으로 촬영한 화면이 이어졌다. 생가터 한가운데에 위치한 안채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다른 건물로 불이 옮겨붙진 않았지만 안채는 안주인이 묵는 곳이자 안방과 부엌이 있는 곳으로, 한옥에서 가장 중심인 건물이었다. 그것이 전소해 주저앉은 생가터는 앞니 빠진 입처럼 볼품없어졌다. 해가 바뀐 지 보름이 채 안 된, 2017년 정유년의 대사건이었다. 서재에서 이를 보고 있던 노인은 제 이가 빠진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생가를 지은 도편수로서 당연한 고통이었지만, 한편으론 앓던 이였던 듯 후련하기도 했다. 지범근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 온 노송 같았다. 거칠고 굽어 있었지만 심이 단단해 쉽게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노인이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방화로 추정하고 있으며, 날이 밝은 후 화재 현장과 인근에서 용의자를 수색할 계획이라 밝혔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운암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범근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아 TV를 꺼 버렸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지만 범근이 새벽 5시에 가까운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건 평소와 다른 이유였다. 누군가가 도끼로 자신을 내려치는 악몽 때문이었다. 평생 톱밥을 먹어 온 도편수로서 아무리 날 선 도끼라도 손쉽게 길을 들였던 그였다. 그런 내가 도끼질에 몸서리치며 깨다니? 범근은 그 꿈의 의미를 짐작하며 TV를 틀었고, 아니나 다를까 불타는 생가를 보며 마침내 깨달았다. 잊고 있던 옛 악우가 자신의 집에 찾아왔음을. 범근은 벽에 걸어 둔 자신의 옛 도끼를 바라보았다. 도끼날은 이도 빠지고 날도 무뎌졌지만, 자루만큼은 견고하고 유연한 물푸레나무라 격조가 있었다. 잡는 자리에 시커멓게 남은 손때마저 은은한 무늬처럼 보인다는 게 물푸레나무의 장점이었다. 열다섯 나이에 배뭇기로 시작해 온갖 공사판을 전전하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도편수가 된 날 잡았던 도끼였다. 그 후로도 한몸처럼 쥐어 온 녀석이었지만, 언젠가부턴 직접 휘두를 일이 없어 서재에만 모셔 두고 있었다. 범근은 자리에 앉은 채로 서재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간 지어 온 집들의 도면과 작업 기록으로 빼곡한 책장을 보며 허무함을 느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로 수백 년을 갈 집을 짓는 게 도편수였다. 하지만 막상 그 세월을 다 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 오니, 그간 걸어온 장인의 길이 덧없이 느껴졌다. 특히나 만든 것 중 가장 소중한 그의 작품은 정작 곁에 없었다. 범근은 핸드폰을 들었다. —아버지……? 새벽에 어쩐 일이세요?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집 짓지 마.” 범근은 제 도끼처럼 본론부터 내리쳤다. —아버지? “다시 지어선 안 돼.” 그의 목소리에선 이미 결심을 끝낸 단호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평소에도 필요한 말만 하는 아버지였기에 아들은 여전히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다. —네? 그게 무슨……. “생가…… 절대 복원하지 마라.” 범근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더 길게 말하려니 목이 메었다. 범근은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옛날 사람이었다. 말 잘 듣는 녀석이니, 이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하겠지. 그의 시선이 다시 도끼로 향했다. 비록 혈육은 곁에 없지만 자네가 있어 다행이네, 오랜 벗이여. 범근은 도끼를 집어 들고는 힘을 주어 도끼날과 자루를 분리했다. 떨그럭, 물푸레나무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생애 마지막 벌목은 도끼날 하나로도 충분했다. “다만 내 집은 누추하니…… 문을 두드리지 말라…….” 범근은 조용히 읊조리곤 도끼날을 입으로 꽉 물었다. 그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상 위로 얼굴을 내리쳤다. 쾅! 억센 나무를 베어 넘길 때처럼 온 힘을 다했다. 첫 번째 도끼질에 날이 입안을 파고들었다. 치아가 사방으로 튀었고, 혀는 반쯤 잘려 나갔다. 쾅! 범근은 스스로 나무이자 도낏자루가 되어 두 번째 도끼질을 했다. 반쯤 잘린 턱은 가슴 근처에서 덜렁거렸고, 검붉은 피가 책상 아래로 웅덩이를 이뤘다. 범근은 휘청이며 끔찍하게 쪼개진 얼굴을 또 치켜들었다. 쾅! 마지막 세 번째 도끼질 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 마침내 고목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