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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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타운
4화. 4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도 15분쯤 걸어가는 동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고, 안전하고, 아늑하긴 무슨.
변두리에 뚝 떨어져 있는 낡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떠올랐다. 가파른 언덕, 낙서투성이 담벼락, 칠이 벗겨진 복도와 한없이 얄팍한 벽, 현관 앞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무서운 노인들. 그런 무례한 시선을 ‘면접’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건 아닐까?
그냥 이쯤에서 돌아가 버릴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앞에 커다란 게이트가 나타났다. 지수는 그제야 지금까지 쭉 걸어온 보도가 높다란 벽돌 담장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문 옆에 붙은 금속판에는 명함 뒷면에 적혀 있던 바로 그 번지수가 새겨져 있을 뿐, 타운 이름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깥쪽 입구에는 보안초소나 경비실처럼 보이는 조그만 벽돌집이 하나 서 있었지만, 선팅된 창문으로 바깥 풍경이 거울처럼 비칠 뿐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대문으로 다가가서 창살 틈으로 들여다보니 양쪽으로 늘어선 측백나무 사이로 난 진입로가 보였다. 저만치 앞쪽에는 화단과 장식용 돌벽 같은 것이 서 있었고,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혹시 그 너머로 아파트 같은 게 보이는지 열심히 기웃거리는데, 어디선가 치직거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두리번거리다 보니 그제야 초소 근처에 있는 패널이 눈에 띄었다. 화면은 새까맣게 꺼져 있었지만,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는지 한동안 잡음이 울리다가 갑자기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뭡니까?”
뭡니까?
“저기, 뭐 좀 여쭤볼게요. 그러니까 여기가 …….”
명함을 꺼내 뒷면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영시 서구 화유동 282-1번지…….”
하지만 저편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상대는 그저 묵묵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지수의 뱃속에서 뭔가 살짝 꿈틀거렸다. 한때는 기세등등했던 목소리, 결국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게 만들었던 그 옛날 성질머리가 살짝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지수는 따지고 드는 대신,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그 사고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젠 목청을 높이기도 전에 손부터 떨리기 시작한다.
“여기가 맞죠? 282-1번지, 세이프 타운.”
“무슨 일이십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긍정도 부정도 없이 되물었다.
“집을 보기로 해서요, 오늘.”
명함을 다시 뒤적거려 그 여자가 적어준 이름을 찾아냈다.
“윤미주 씨 소개로 약속을 잡았는데 제가 조금 늦어서요.”
“누구요?”
“윤미주 씨요. 여기 사시는 걸로 아는데.”
뚝. 마이크의 연결 버튼을 꺼버렸는지 갑자기 기분 나쁜 침묵이 찾아왔다. 뒤쪽 도로로 몇 대의 차들이 쌩하니 지나간 뒤 한참 만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서지수예요.”
참, 방문객 리스트 같은 걸 생각 못 했네. 이름을 올려뒀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을 끊은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지수의 머릿속은 여전히 연결 상태가 좋지 못한 전구처럼 가끔 깜빡깜빡 불이 들어왔다가 나가곤 했다.
“신분증 있으십니까?”
“시, 신분증이요?”
허둥지둥 가방을 뒤지는데 건조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좋아요, 서지수 씨. 거기 보이는 모니터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신분증을 들고 화면을 똑바로 봐주세요. 그리고 오른쪽 검지를 아래 패드에 찍어주시면 됩니다.”
“네?”
무슨 말인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화면 위에 조그만 빨간 불이 들어왔다. 어둡던 화면이 확 밝아지더니 지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너무 가깝고 너무 사실적이라 할 말을 잃고 허둥대는 사이 아래쪽 패드에서도 빨간 불이 깜빡거렸다. 거기에 오른쪽 검지를 갖다 대자 불빛이 어른거리더니 잠시 후 사라졌다. 이윽고 철컹하는 위압적인 소리와 함께 커다란 게이트 한쪽의 조그만 쪽문이 열렸다.
“들어가십시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까아아아악악.
멀리서 까마귀가 놀리듯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