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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웃집의 탐스러움

2026.05.28

 

이웃집의 탐스러움

 

 

 

[픽셔너리 2]

 

 

작품 소개

 

낯선 채로도 다정할 수 있을까

친해지고 싶어서 수상해지는 마음

*

가장 가까운 곳의 타인,

이웃에게 건네는 탐스러운 이야기

 

 

수수하지만 굉장해!

정기현 소설의 새로운 출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작년 초여름, 첫 책 출간 인터뷰에서 정기현은 말했다. 써둔 소설들을 다듬어 단편집을 냈으니 중편소설은 아주 새롭게 쓰는 중이며,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때라고. 그때 쓰던 소설 이웃집의 탐스러움이 북다의 중편 시리즈 픽셔너리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25슬픈 마음 있는 사람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정기현의 반가운 첫 중편이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이웃을 사유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은유하는 소설이다. 낯선 옆집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일, 생전 처음 취업해 월급을 받는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뜻밖의 사건들까지. 작가와 이름이 같은 소설 속 정기현은 모든 장면을 한데 엮어 이웃에게 건네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현실 어디쯤 있을 것 같은 작은 동네를 미로처럼 헤매다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건 실은 대단한 고백보다 작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정기현의 소설을 읽으면 정말이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정말 잘 쓴다.

강보원(문학평론가시인)

 

비밀들, 미로들, 너무 사랑스러워 탐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이 소설의 탐스러움을 한번 맛본 나는

정기현의 다음을 계속하여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함윤이(소설가)

 

 

이웃라는 책을 읽어주세요

친구, 연인, 선후배, 동료세상엔 많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웃은 이상하리만치 멀다. 집이 우리가 진짜 자신인 채 머무는 유일한 공간이라면 이웃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일 텐데 어째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질문에 뒤따르는 골똘한 생각. 한 사람을 속속들이 알기 위해 책 한 권 정도는 필요하다. 상대를 떠올리며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써서 건넨다면,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진정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정기현은 본가에서 독립하여 서울 외곽의 21평 신축 아파트로 이사 온다. ‘기현의 본가에는 특이한 가풍이 있다. 손님을 불러 융숭하게 대접하고 대가로 이야기를 받는 것. 하지만 기현은 부모 집이 삶과 이야기를 끝내 잇지 못하는 이야기 지옥이었음을 깨닫고 독립해 나온다. 새집에서 우연한 계기로 옆집 부부 기은’, ‘준영과 안면을 튼 기현.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종종 저녁을 같이 먹다가 거의 매일이 되고, 급기야 그들과 마을 축제 연극 무대에 함께 서는 사이가 된다. 축제 날 연극 무대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첫 독립, 첫 이웃, 첫 취업, 첫 월급, 첫 뜻밖의 사건과 돌발 상황현실적이거나 허무맹랑한 많은 처음을 겪고 난 기현은 기억과 경험을 이야기로 적어보기로 한다. 그것을 이웃에게 건네고 지금보다 복잡하고 자세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 저와의 대화에 임해준다면 우리는 좀 더 복잡하고 자세한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두 분께 이 책을 드리는 이유는 별일이 없었다면 진즉 자연스레 되었을지도 모르는 진짜이웃 관계를 당신들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미로우리 동네 헤매는 법

 

이곳에서 저곳까지 걷던 대로 걸어가면 그만일 일을

미로라는 형식을 통함으로써 걷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는 훨씬 큰 기쁨을 안게 된다.

본문에서

 

아늑한 부모 집에서 독립한 삼십대 여성이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그사이 만난 이웃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어 쓴 긴 편지 혹은 자기소개서라고 이 소설을 설명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납작한 요약으로는 이웃집의 탐스러움의 매력을 전할 수 없다. 어느 면에서 정기현의 소설은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삶과 닮아 있다. 이야기와 사건 사이 종잡을 수 없지만 자연스러운 전환. 현실을 살아가며 겪는 많은 일은 우연히, 뜬금없이, 엉겁결에 일어난다. 이유 없음을 견딜 수 없어 우리는 작은 두뇌로 그 사건들을 잇고 해석하기 위해 애쓴다. “벌어진 일을 벌어진 그대로 꿀떡 삼키지를 못하고 나방처럼 이유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다. 하지만 헤매고 헤매다 마침내 그럴듯한 이유에 도달하고 난대도 그것이 꼭 진실이라는 법은 없다.”

정기현의 단편이 최단 경로를 찾는 효율주의자들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배회하는 산책자의 소설”(임선우 소설가)이듯, 좀 더 호흡이 긴 이웃집의 탐스러움도 반복되는 일상과 동네라는 좁은 시공간에 미로를 설계해 독자를 헤매게 만든다. 모름지기 산책이란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기꺼이 미로로 만드는 일이다. 길가의 풀을 들여다보고 사마귀의 움직임을 탐구하고 문득 마주친 고양이와 눈 맞추다가 벤치에 잠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이상한 모양의 구름을 찾아보기도 하는, 그렇게 15분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걷게 만드는. 그러므로 이웃집의 탐스러움을 읽고 나서의 기분은 갓 산책을 마쳤을 때의 개운함과 닮았다. 개운함의 함량은 스스로 찾아 들어간 미로를 탈출했을 때의 묘한 기쁨, 약간의 땀, 발그레해진 얼굴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정기현의 꽃말은 용기

이 소설에 흥미로운 해석을 더해준 문학평론가 겸 시인 강보원의 관점을 덧붙이면 이웃집의 탐스러움이야기자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기현의 부모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진귀한 대접과 맞바꾼 이야기의 주인을 결코 자기네 삶 속으로 들이지 않는다. 수집하고 소비할 뿐 정작 이야기를 내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그들은 결국 이름 모를 이야기 주인에게 두들겨 맞는다. 반대로 이 소설에는 이야기를 삶에 너무 가까이 두는 인물도 등장한다. 이웃 사랑론을 설파하고 그것을 일상에 구현하려 한 그는 큰 위험에 빠진다.

그럼 어디쯤이 적당할까. 비겁함과 위험함 사이에서 기현은 관계라는 말로 질문을 풀어보려 한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이야기란 기어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야 하고, 전한 이와 전달받은 대상 모두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것을 쓰기 전과 쓴 이후가 같을 수 없는 글쓰기”(강보원)니까.

내내 좀 귀엽고 엉뚱하며 은은하게 천연덕스러운 정기현의 소설이 내심 진지해지는 지점이 있다면 그건 이야기가 가진 에너지 때문일 듯하다.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이야기가 전해진 다음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버리는 힘. 정기현 소설의 꽃말을 용기라고 붙여본다면, 그 힘의 무서움을 아는데도 기어코 이야기를 계속 사랑하기로 하는 마음 덕분이다. 정기현이 만든 세계에 들어가기 전, 수영하는 사람처럼 준비하면 좋겠다. 힘을 뺄 것,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 그러고 나면 곧 정기현은 독자 이웃 여러분을 가본 적 없는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이다.

 

[픽셔너리]

픽션(Fiction) + 딕셔너리(Dictionary)’의 합성어인 픽셔너리를 픽션화하는 A부터 Z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수록한 가상의 사전입니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탐색의 즐거움을 전합니다.

 

 

작가 소개

정기현

2023년 문학 웹진 림(LIM)농부의 피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등이 있다.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차례

이사

705706

가문 이야기

시루떡

충녕에서 온 사람

손잡이가 새파란 나무 서랍장

방송국 가자

다른 국면

몰입의 기쁨

한마을 한마음 대축제

등 떠밀리기의 이로운 점

말과 행동을 약속하면 연극이 된다

강물이 흘러 천 리를 가면

연습만이 살길이다

축제의 날: 아침

축제의 날: 저녁

우리들의 손잡이가 새파란 나무 서랍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듣고 싶은 말

편집하는 사람

회사 생활

발문 | 이야기와 함께 살기_강보원

추천의 글 | 함윤이

 

 

책 속으로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다. 말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면 그곳에는 늘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아는 사람. (23)

 

기은과 준영은 침묵을 나보다 더 잘 견디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셋 중 둘의 편에 있기 때문일 테다. 나는 셋 중 하나의 편에 있기 때문에 적막이 초조했다. 이 고요함이 내 탓이면 어쩌나 싶었다. 이웃 사이에서 나누면 좋을, 닳지도 않을 대화 주제 어디 없을까? (43)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로구나.

일터에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치의 봉급을 받고. 먹는 데 다 써버리는. (60)

 

집에 돌아가고 싶어. 넓은 방. 실내 계단. 조도를 열세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조명. 일주일에 매양 한 번씩 세탁되는 보송한 카펫. 묵직한 원목 문. 맞춤 책꽂이. 두 번째 거실 그리고 세 번째 거실. 초대를 거절하는 법이 없는 손님들. 그들의 바깥세상 이야기. 그들에겐 우리가 바깥이었겠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했던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면 영영 그 집 안에 갇히고 말겠지. (60)

 

일생 동안 굳혀온 자기 인식은 이렇게 한순간에 모래알이 되기도 한다. 흩어진 모래알들은 한 알도 빠짐없이 주워다가 다시 다른 형상을 만드는 데 써야겠지, 그게 어떤 형상이 될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지만. (70)

 

너의 삶을 구렁텅이로 처넣을 지뢰를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 그때 이 세 문장을 꼭 쥔 채 지뢰를 마주하면 삶은 천연덕스럽게 너를 다음 단계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생각을 습니다체로 고쳐 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흐르는 속도를 평소보다 늦출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내가 어느새 한가운데로 들어와버린, 그래서 전체를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사태를 조금이나마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정신을 차립시다!

일을 그르치지 맙시다!

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맙시다! (120)

 

부부가 되면 이렇게 매일같이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거야? 부부란 좋은 것이구나. 그런데 둘만 있으면 심심하거나 난처할 때는 없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기은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을 때 준영이 나 없이 혼자 남아 있었어야 한다면. 손을 내밀어도 맞잡을 상대 없이 배우자의 화가 풀리기를 그저 기다려야 한다면. 그땐 무슨 마음일까? (23)

 

이 식탁에 음식을 차려두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가 음식과 함께 깨끗하게 치워버리는 것이 나의 부모가 세상을 이해하는, 아니 세상을 먹는, 세상을 먹는다고 하니 눈앞에 놓인 것을 잡히는 대로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런 게걸스러움 뒤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게걸스러움 뒤에는 잔혹한 대가가 따른다. 이것도 누군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일까?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침실 문을 열고 그러니까 이제는 그렇게 살면은 안 돼…… 말하고 싶었으나 왜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반문이 돌아온다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문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128)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기은과 준영과 나.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내게도 세상에도 미지일 그다음 영역을 기꺼이 탐사해보고 싶다. 기은 그리고 준영과 함께…….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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